나를 벼르러 떠나다. -도보여행 첫째날

01 8월 나를 벼르러 떠나다. -도보여행 첫째날

도보여행 첫날- 나를 벼르러 떠나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침 10시 시외버스에 올랐다. 떠난다는것은 참으로 홀가분한 결단이다. 빗방울이 내리치는 창가너머의 지나치는 풍경을 보며 원주까지 갔다.
원주에서 다시 진부행 버스에 올랐다. 할머니 몇 분이 타신다. 비는 계속 후둑 후둑 뿌리고 잠시 졸고 나니 장평이다. 가난과 순박함이 삶을 통하여 묻어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리신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버스를 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버스는 진부로 향하고 이윽고 진부의 낡은 시외버스주차장에서 나의 도보여행은 시작이 되었다. 윈드점퍼와 모자 속에 나의 몸을 감춘 채 비 내리는 진부의 거리를 걸어갔다.    늦은 점심을 근처의 산채 백반집에서 해결을 하였다. 밥을 먹으며 상원사까지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1시간 뒤에 있다고 한다. 일단 30분 뒤에 있는 월정사행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미리 나가서 겨울 가랑비를 맞으며 차를 기다렸다. 비를 맞으며 선 채 너무나도 익숙했던 자동차로부터 해방이 된 상태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보노라니 마음한구석엔 뿌듯함과 자유로움이 몰려온다.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는 여행의 시간. 내가 세상에 어떻게 비쳐진들 어떠리. 나는 나일뿐인데. 이 온전함과 아늑함의 자유 속에 서 있는데.

월정사행 버스를 탔다. 사춘기의 잔흔이 여기저기에 묻어나오는 고등학생과 시장에 갔다오는듯한 할머니 한분이 비 내리는 월정사행 버스의 우일한 동행이었다.
월정사에서 내려 경내를 거닐다가 상원사행 버스시간이 남아서 무작정 걸었다. 차로 번질나게 드나들던 전나무숲과 그 아래 부도탑이 있던곳. 그 길을 오늘 나는 잔설위로 비가내리는 시간에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맑은 전나무숲의 공기가 행복하게 가슴을 적시며 스며든다. 천천히 천천히 나는 걸었다, 어떤 쫓김도 없이 옷을 적시는 비도, 가끔씩 지나가는 차도 신경씀 없이 그렇게 걸었다.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심심하여 전나무에 기대도 보고 그 우람한 전나무를 안아도 보았다. 용감하게 달려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중년의 부부와 내가 전부. 털털거리며 버스는 8km를 달려간다. 열심히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보낸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도 몰랐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 온다. 저 너머에 저런 돌담길이 있었구나. 저것이 옛사람의 돌담길이렸다. 눈이 차라리 왔더라면 좋았을것이다. 얼마전에 눈이 많이 왔었나 보다. 잔설이 여기저기에 지난시간의 관록을 자랑하듯 제법 많이 쌓여있다. 적설의 자부심을 희롱하는듯 비는 추적 추적 내리며 회색빛 풍경을 만들어 낸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이 있는 중대사로 향하였다. 호흡이 가빠온다. 힘이 벅차면 잠시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몇 번을 쉬었을까. 저 멀리 산비탈에 지은 중대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 사이 삶에 찌들어 버거워하던 폐부가 뻥 뚫리며 정신은 초롱초롱해진다. 사무실에서 주지스님께 하루 밤 묵어갈 것을 청한다. 편한 수행자의 기운이 흐르시는 주지스님이 기꺼히 승낙을 하신다. 약간의 비용을 사례로 드리고 나는 남자들만이 사용하는 방을 들어가 짐을 풀었다. 세분의 중년을 넘어 선 남성들이 그 방에 일찌감치 자리 한자리씩 만들어 놓고 머물고 있었다. 이런데서 만나면 눈인사는 할지언정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묻는 것은 결례이다. 조촐한 김장김치중심의 식단으로 짜진 저녁공양을 하고 나서 나는 따뜻한 방안에 앉아 무엇을 할 것인가 한참을 생각을 하였다. 문명의 이기로부터의 자유, 깊은 산속의 가난한 시간이 주는 평화. 문사이로 넘쳐 들어오는 맑은 산 내음. 이미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감동이 일었고 감사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누구나 조금만 자신을 들여다 보면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가 있다. 현대인들을 그 조금의 시간마저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년을 보내고 어느 순간인가에는 자신 안에 찬 찌꺼기마저 자신으로 받아들인 채 그렇게 인생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올겨울에 들어서며 내안에 너무도 많은 묵은 찌꺼기가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홀로 세상에 나온 지 6년,그 시간속에서 조금씩 내안에 쌓여 온 찌꺼기들이었다. 시퍼렇던 내안의 칼이 녹이 슬고 무디어진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내안의 칼을 용납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칼을 다시 벼르고 싶었다. 찌꺼기를 버리고 나의 칼을 다시 벼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편 속에 던져진 여행이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시외버스와 가능한 많은 걸음이 있는 여행을 선택하였다. 걸으면서 느끼던 내 몸의 불편함, 마음의 갈등은 어느 순간인가 찬찬히 들여다 보노라면 그것은 나의 본질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착각속에 내안에 들여 놓은 껍데기였다.  껍질은 가라. 온전히 나로서 함께 갈 가장 가볍고 중요한 그것들만이 내 인생의 길에 동지로서 남아있어야 한다. 그 참 동지들이 거짓동지들에 의해서 얼마나 서러운 시간들을 보냈을것인가.  깊고도 깊은 산중의 암자골방에 앉아 나를 내려놓고 들여다 보려니 많은 생각과 감회가 스쳐간다. 어쨌든 이 결단과 내 눈앞에 있는 이 현실은 행복 그 자체였다.

방에다가 자리를 깔아 놓고 나는 작은 손전등 하나만 들고 비가내리는 가운데 길을 나섰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묻혀있다는 적멸보궁을 찾아나서는 길이었다. 비가 내리고 어둠이 깔린 산길을 무작정 걸어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산짐승이라도 뛰어 나올듯한 분위기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와 더불어 나를 시험한다. 적멸보궁의 작은 공간에 앉았다. 스님의 예불이 진행되고 있었다. 108배를 하였다. 불상도 없는 텅빈 공간, 나를 낮추는 절은 먼저 깨달은 성인에 대한 존경으로서 시작하여 내안에 있는 위대한 본성을 향하고 있었다. 나를 받들지 마라. ‘네 안에 다 있다’를 위하여 그 많은 말씀과 경으로 풀어낸 것이 불교이다. 그 누구보다도 인간이 가진 본질성과 충만성을 중시하고 알린 분이 석가모니이다. 오늘날의 모든 인간자원의 바탕적 이론은 불교가 갖는 인간의 본질성에 대한 긍정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나는 묵묵히 앉아서 이 외로운 산골에서 타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든 생명과 나 자신 속에서 빛나고 있는 불빛을 명상하였다.
‘내안의 석가모니, 내 안의 불빛, 불빛은 차별함이 없고 만물을 밝히며 만물에게 희망을 주며 또한 따듯하나, 행여라도  그 불 빛을 무시하여 손을 대면 그 날카롭기는 칼날 못지 않으니 이 것이 따뜻하면서도 준엄한 건강한 권위이다.’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 안에서 편안하게 빛을 내는 내 자신의 촛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처도 웃고 세상도 웃는 시간이었다.
‘진리의 말씀으로 빛을 밝히고 너 스스로서 빛을 밝혀라.’ 석가가 한 깨달음의 말씀이다. 빛은 어디에 있는가. 빛은 찾는 것인가. 아니다. 빛은 온전히 내안에 있는 것이다. 그 것은 만드는 것도 찾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온전한 나로 돌아와 바라보는 것이다.
적멸보궁의 작은 공간을 빠져 나와 나는 처마돌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내안의 불빛을 품은 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돌아서 다시금 돌아 오는 어두운 산길엔 넉넉한 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어둠도 바람소리도 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몸을 누였다.  옆에 있던 어떤 분이 밖으로 나가려다 이불하나만 덮은채 자는 나를 보더니 못내 안스러웠던지 “이사람. 왜 이렇게 춥게 자지” 하면서 이불하나를 가져다가 덮어준다. 나는 그분의 말과 행동이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그냥 눈을 감고 자는척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게 이불을 덮어주던 그 실체는 갑자기 자애롭고 따뜻한 인상의 귀부인으로 변하였고. 나는 순간 놀라서 눈을 떠봤다. 분명히 이불을 덮어주었는데 그 이불을 보이지를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에 한참을 천정을 쳐다본 채 누워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예불을 하고 있는 법당엘 올라갔다가 나는 거기서 그 귀부인의 얼굴을 보았다. 묵묵히 미소지으며 앉아있는 보살상,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보살이 문수보살이란다.
이 오대산은 문수보살과 인연이 깊은 산이다.  세조가 단종을 위해하고 왕이 된후 어느날 꿈에 단종이 나타나 침을 뱉은 후로 깊은 등창에 시달렸는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던 중 이 오대산 상원사에 요양을 하러 왔다가 어느날 계곡에서 몸을 씻게 되었다. 그 때 어린 동자가 지나가기에 등을 밀어 달라한 후 절대 어디가서 왕의 등을 밀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자 그 동자가 왕에게 ’왕께서도 어디가서 절대 문수동지를 만났다고 하지 마시오‘ 한후 홀연히 사라지기에 신기하게 여겼는데 더욱이 그날로 왕의 피부병이 다 낫는 신통이 벌어지자 이를 고맙게 여긴 세조가 기억속의 문수동자를 떠올려 목상을 만들도록 하니 이것이 상원사의 보물로 지정 된 목조문수동자상이다. 어쨌든 편안하고 감사로운 체험이었다.

2009년 12월 1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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