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2월 남한강 자갈밭 낚시터에서 만난 강태공의 지혜
남한강 자갈밭 낚시터에서 만난 강태공의 지혜
“스스로를 타파하지 않는 자는 타도 당한다.”
주말을 충주에서 보냈다. 충주 탄금호의 겨울은 겨울대로 호젓한 맛이 있었다. 코 끝을 스치는 공기는 살아 있었다. 같은 한강줄기라도 여의도의 썩은 공기와는 달랐다. 어떤 무거운 생각도 문을 열고 강가에 서면 단번에 씻겨가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주말을 홀로 충주에서 머물게 한 것은 결정적으로 충주의 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봄,여름,가을 일을 마치고 위로 올라가다가 강가를 문득 바라보면 유유자적한 흐르는 남한강 자갈밭에서 옹기종기 모여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곤 하였다. 그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를 세우고 그 곳을 내려다 보니 여전히 낚시를 하는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 무작정 차를 자갈길로 돌렸다. 차로 덜컹거리길 몇 분, 차는 그들만이 아는 자갈밭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그들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물가로 걸어갔다. 남한강 물은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백조떼가 풍경을 더하고 있었다.
김치찌개를 끓여 점심을 나누던 그들 중 몇몇이 나를 발견하고는 식사를 권한다. 괜찮다는 나에게 밥을 떠서 수저까지 안기는 호의가 참으로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 얼떨결에 그들 옆에서 한 끼를 대접받았다. 지금은 잊고 사는 골동품 기억 같던 예전 사람들의 인정이 그곳에 있었다. 가난했던 지난날, 새참을 먹는 사이로 나그네가 지나가면 의례 이 땅의 사람들은 “밥 한술 뜨고 가세요.“가 상식적 인사였다. 지금은 내 배부르기에 혈안이 되고 그것이 능력이 되어버린 사회, 오늘날의 탄핵사태는 그런 시대의 정점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왁자지껄 요란스럽게 형님 아우 하는 그들의 낚시터에서는 구색은 허름해도 연신 붕어가 낚시대 위로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하늘을 향해 날다가 내려오곤 하였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유쾌한 강태공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시로 강의 흐름이 바뀌고 그에 맞춰 강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뀌곤 하였다. 그 풍경이 좋아서 나는 충주를 그냥 떠나올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다시 푼 나는 허름한 낚시대 하나를 사서 그날 저녁 그 남한강 자갈밭으로 달려갔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낚시가게 주인은 걱정된다는 듯 말을 던진다. ”그래서 고기나 구경하시겠어요.“ 어둠이 깔린 강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물을 비추는 달 하나, 그리고 무수히 총총한 남한강의 겨울별들, 이따금 울어대는 백조들의 소리. 나는 낚시대 한번 달한 번, 별한 번을 쳐다보다가 뼈끝을 스치는 냉기가 몸을 휘적시고 들어올 무렵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곳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슬쩍 허름한 낚시대를 그들 사이에 놓고 물을 응시하였다. 아무 반응도 없는 낚시대, 자리를 몇 번인가 옮겼다. 내가 그곳의 낚시 사부라고 지칭한 강태공이 내게 말을 던진다. ”낚시대를 가지고 고기를 잡아볼 욕심으로 이리저리 다닌다고 고기가 낚이지는 않습니다. 한자리에서 그곳의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그래서 그곳의 특성을 모두 파악했을 때 비로소 고기가 보입니다.“ 나는 뒷퉁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담백한 삶의 지혜인가, 몇 백개의 논문보다도 몇 천개의 개념보다도 힘이 있는 남한강 물가에서 오랫동안 몸으로 체득한 지혜가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자는 세상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고객을 읽지 못하는 자는 고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그 유쾌한 강태공은 들려주고 있었다. 세상을 읽지 못하던 대통령이 결국 슬픈 귀결을 맞이하고 이제 대한민국에는 세상을 읽지 못하던 정치인들이 의기양양 그 곳을 넘보고 있다. 남한강 자갈밭 여울이 굽이치는 작은소에는 고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강을 읽지 못하는 나처럼 어설픈 낚시꾼에게는 입질조차 주지를 않았다.
그들이 놀면서 고기를 담을 때 나는 강물과 백조떼의 풍경만 눈에 담다가 올라왔다. 스스로 세상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게으름과 오만과 불통을 타파하지 않는 자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다. 타도당하기 전에 스스로 타파하라. 그 것이 비단 대통령만의 문제일까. 정치인, 직장인 모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제일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타파하지 않는 자는 국민으로부터, 유권자로부터 직장으로부터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강에는 고기가 넘친다. 오직 자신 안에 웅크린 탐욕과 오만과 조급을 타파하고 그 겸손함으로 저 강의 마음을 읽는 자만이 고기는 입질을 허할 것이란 것은 강이 말을 하고 허름한 동네 강태공들이 알려준다. 2016년 대한민국의 겨울이 어떻게 봄을 맞이해야할지를 충주 강가에서 배웠다. 조용히 강가를 빠져 나올 때 강가에는 마른 갈대가 서걱거렸고 백조는 물길을 따라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2016년 12월 13일 하카 김익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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