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용기,두려워하면 진다.

01 8월 불굴,용기,두려워하면 진다.

두려워하면 진다.

새벽녘 옆산에서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은 항상 생동감의 긴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새벽의 고요함속에 담겨져 있는 갓난아기의 살내음 같은 달콤한 비릿함이 좋다. 신문은 어느새 문 앞에 놓여 있다. 이사 온지 10년 한 번도 제시간을 어긴적이 없는 신문배달원의 얼굴이 항상 궁금하다. 이렇게 새벽은 오늘도 생기넘치는 긴장을 품은 채 어김없이 우리들 앞에 선다.

그러나 어쩌라 이 새벽이 지나가면 이 땅은 또다시 메르스의 소란함이 진동을 할진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특허인 야단법석,아전인수가 아니라 의연하고 질서있는 대응일 것이다.

얼마전 자신감 과잉인 초등학교 아들이 내게 물었다. “아빠!. 저는 사람들이 물에서 빠져 죽는 것이 이해가 안돼요. 조금만 수영을 할줄 알면 될텐데. 저렇게 허우적 대고만 있으니 참 이해가 안돼요.”나는 아들에게 이야기 했다. ‘사람들이 물에서 죽는 것은 수영능력의 유무와 상관이 없다. 물에 빠진 순간 자신을 엄습하는 두려움에 이성을 잃어서 자신도 죽고 구하러 온 상대마저 죽이는 경우가 많단다.’

물이 두려우면 물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께서 장마비에 휩쓸린 기억이 있다. 73년 무렵이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그 여름. 빗속에서 마을사람 한사람이 다급히 집으로 뛰어들었다. 그 분이 들려 준 이야기는 아버지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 가셨다는 소식. 그러나 어머니도 우리들도 참으로 침착하게 상황을 맞이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철인 같던 당신에 대한 믿음이 그런 담담한 반응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상황인즉 수리조합장을 맡고 계시던 아버지가 그 전해에 건설한 마을의 보가 홍수에 유실이 될 위험에 처하자 책임자로서 보 밑의 상태를 직접확인해 보시겠다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곳의 위험 속으로 뛰어들으셨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지셨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저녁 무렵 철인의 믿음에 응답하듯이 비에 흠뻑젖은 몸을 하신채 집으로 걸어들어 오셨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수군거렸다.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는 어제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물속으로 들어가 보의 바닥을 살피려는 순간 안의 소용돌이가 자신을 삼켜버리더란 것이다. 그 순간 이 상태로 살려고 버둥대며 나가다간 물을 먹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더 물밑 바닥으로 가자고 생각을 하셨단다. 숨을 참으신채 격류에 떠밀리며 바위와 자갈바닥을 부딪히고 넘어지며 기어가다 보니 물결이 잦아든 것이 느껴지셨다고 하셨다. 그제야 물위로 올라와 개울가로 걸어나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광경을 망연히 바라보며 보에 모여 있던 주민들의 함성이 터지더라고 하셨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날 당신께서 어린 우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 두려울수록 두려움을 빠져 나올려고 버둥대면 두려움에 진다는 것이었다.

지금 사회를 강타하는 메르스에 대한 반응은 지나친 두려움에 대한 과민반응이다. 럭비의 역동적 생장 원칙의 첫 번째가 절대 불굴 이다. 환경에 기대하지 않고 환경을 수용하고 뛰어넘는 조직과 개인만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나는 때로 두렵다. 세월호, 메르스를 거치면서 어른들의 호들갑과 그들의 보신을 위해서 수학여행이고 운동회고 모든 것이 멈춰져 면역적 경험의 연속성이 단절된 청소년 세대가 20년 뒤의 삶에서 어떤 현상을 보여줄지.

담담히 가야한다. 이 새벽처럼 싱싱한 긴장을 놓치지 말고 아침을 맞이해야한다. 럭비처럼 비가오면 어때 하면 되지하는 불굴 의 정신적 자세로 가야만 한다. 이런 정신적 구조가 없는한 메르스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더 많은 환경적도전이 펼쳐질 미래의 아침을 우리가 결코 못 맞이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사실은 가장 큰 두려움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떨지는 메르스를 대응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보면 알 것이다. 메르스는 대한민국의 건강성을 읽는 리트머스지이다. 앞에 닥친 두려움을 넘어서 여기까지 걸어 온 앞세대의 교훈처럼 두려움에 흔들리지 말고 담담히 안으로 자신감을 갖고 오늘도 우리는 새벽을 맞이하고 아침을 걸어가야만한다. 그것만이 앞세대가 그랬듯이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교훈이고 정신적 유산이다.

수 없이 떠도는 악플과 남탓의 행태가 결코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아닌 것이다.

2015년 6월 18일 남한산성자락에서
하카 김익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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