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01 8월 미역국

미역국

저녁에는 모여앉아 식구들과 함께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엄마, 미역국 안 먹을래.” 아들이 음식투정을 합니다.“미역은 몸에 좋은 것이란다. 미역은 피를 맑게 해준대. 그러니까 맛있게 먹어.” “예. 알았어요.”

어느 바닷가 찬 바람속에서 건져 올린 미역을 먹고 있습니다.
담백한 미역이 소고기 조각과 만나면 책을 읽으며 가난을 벗 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집처럼 담백한 아취를 만들어 냅니다.

아내가 특별히 나를 위해서 두툼한 줄거리가 많은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매끌 매끌하고 얇은 미역보다는 씹히는 맛이 일품인 굵은 미역을 제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두툼하고 굵은 미역줄기를 입에 한입 넣고 씹다보면 거친 바다의 역사를 만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미역을 한입 씹으며 미역국을 쳐다 보았습니다. 갑자기 맑고 담백한 미역국에 어머니가 보입니다. 조용히 웃으시며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가 보입니다.

어머니가 제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미역국은 맛있니?. 네가 태어난 날 나도 부은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 이 미역국을 먹었단다. 너를 낳았던 그날의 마음이 이 미역국에 있단다. 그날의 고통과 기쁨과 새로운 피에 대한 희망이 이 미역국에 있단다. 세월이 지나도 이 미역국을 먹는 날에 너와 나는 항상 함께 할 것이다. 오늘의 새로움, 그날의 이 에미 마음을 미역국을 통하여 알아주었으면 한다.” 미역국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말없이 미역국을 떠서 입에 넣습니다.

아이들은 평화롭게 장난을 쳐가며 밥을 먹고 있습니다. 일찍 홀로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생일을 챙겨 먹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일을 챙긴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져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전에 어머니는 전화를 하셔서 “오늘이 네 생일인데 못 챙겨줘서 마음이 찡하구나.”하셨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40의 중반이 넘어서야 미역국속에 담긴 어머니의 말씀을 읽습니다.

생일날의 미역국에는 굳었던 미역이 물에 불려서 책두루마리 펼쳐지듯 압축된 메시지가 얼굴을 내 비치며 어머니의 말씀이 맑고 충만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생일날의 미역국에는 그날의 그 고통과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가, 힘겹게 수저를 들고 떠드신 바다의 기운을 당신의 젖무덤에 파묻혀 보채던 내게 다 내주시던 그 사랑의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싱싱한 동해의 미역처럼 태어나셔서 인생풍파의 바람에 자식과 지아비를 위하여 온몸을 다 던지시고 쭈글 쭈글 미역처럼 몸과 마음을 애태우시며 사시다가 조용히 평화로운 아침에 떠나신 어머니. 미역은 어머니의 생을 모습으로 메시지로 이야기 합니다. 미역국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는 나의 40중반의 생일날 나는 미역의 두루마리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2010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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