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無心히 걸어갈 일이다.

01 8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無心히 걸어갈 일이다.

일요일아침 일어나 보니 밤새 비가 내렸고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의 집 인근 산자락에는 하우스에 불당을 모시고 거처하시는 스님이 계시다. 출가를 하고도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보살핌을 위하여 어머니가 다니시는 병원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위하여 산사를 내려오다 보니 거처하게 된 곳이 바로 그 움막 암자이다.
올해 봄 아내와 경안천길을 산책하러 갔다가 예쁜 연등이 인적이 뜸한 길을 따라 이어져 있길래 따라가 봤더니 그곳에 편안한 얼굴을 하신 그 스님이 계셨고 그날 우리는 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내려왔다.
세상이 어찌 호락호락하겠냐는 듯 주변 땅 주인의 민원에 고통을 받기도 하고 그 민원을 했다는 사람의 조상묘가 지난여름의 폭우에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백골이 암자마당에 흘러내려오기도 하는등 이런 저런 호된 신고식을 겪으며 암자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가끔 궁금하면 올라가 뵙고 오지만 그 동안 왕래가 뜸했던지라 오늘을 한번 찾아가리라 결심하던 차였다.

비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우의를 입고 자전거를 두 손에 잡은채 아파트 현관앞에 섰다. 자전거에 올라타며 나는 나에게 중얼거리듯 말을 흘렸다. ‘비가 나에게 無心하듯 나도 너에게 無心할 뿐이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바지가 빗물에 흠뻑 젖어 버렸다.

차가운 느낌을 무시한 채 빗속으로 페달을 밟는다. 어느 순간 차가운 느낌도 사라지고 체온이 비에 젖은 바지를 덥히고 있었다. 낙엽이 쌓이고 비가 내리는 경안천 길을 가는 즐거움이 온몸으로 밀려 온다. 나도 비에 무심하고 비도 나에게 무심히 내리는 시간,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하니 세상은 평화롭고 안온하였다.

우리는 삶에서 너무도 유심(有心)을 기대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대개 그 유심은 환경에 대한 기대와 의존의 양식으로 표출된다.
비가 안 왔으면, 비가 오더라도 나만 피해갔으면 이 모든 기대와 의존의 유심은 행동을 방해하고 갈등을 낳고 불만을 낳고 심지어 自殺을 낳는다. 반대로 우리들이 삶에 대하여 너무도 당당히 무심 할 수 있으면 럭비(Rugby)의 패러다임이 그러하듯 ‘그래.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되지.’하는 결단의 주체성을 회복하게 된다.
지나친 기대와 의존의 유심으로 키워진 세대. 그리고 그런 문화적 양상들이 무심한 이 우주에서 갈등을 낳고 좌절을 낳고 스스로 죽음에 내모는 결과를 양산하는듯하다.

하늘과 신과 자연,그리고 나의 환경은 항상 이렇듯 무심하거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무심히 나를 들여다 보며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햇살이 아름다운 들판이 나오면 들판에서 미소한번 지으면 될일 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또 세상에 무엇을 기대하며 서있는가. 세상에 기대하지 말고 나에게 유심으로서 기대할일이다. 비는 내가 그 암자에 도착할 때까지 내렸고 나는 흠뻑 젖은 바지를 입은채 법당에 서 계신 스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
만남을 갖고 내려 오는 길은 비가 그치고 맑은 가을 햇살이 산과 들판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며 중얼거렸다. “나도 무심히 너도 무심히 우리는  이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비가 오면 어떠하리, 해가 뜨면 어떠하리. 나는 단지 내가 온 길을 가고 있을뿐이거늘..”

어쨌든 비에 젖은 낙엽이 햇볕에 반짝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가을길은 아름다웠다. 무심이 충만히 넘쳐흘렀기 때문이리라.

2009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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