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풍경이 디지털 가슴을 씻어내리다.

01 8월 아날로그풍경이 디지털 가슴을 씻어내리다.

지난주 나는 호남선 KTX 상행선에 몸을 실은 채 앉아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얼굴 치워라!. 재수 없다.” 큰소리에 얼굴을 들어 보니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젊은 병사였습니다. 어찌 저런 소리를 할까 하고 쳐다 보았다가 이내 그것이 나의 오해였음을 알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창밖에는 환송을 나온 친구들의 얼굴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엉뚱한 그 표현은 그 병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반어법이었습니다. 아쉬운 듯 창을 두드리는 친구들의 애뜻한 우정이 그에게는 너무도 고맙고 미안하고 아쉬운 그 무엇이었을 것이고 그런 그의 마음이 그런 반어법으로 표현되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내 기차는 플랫폼을 떠나고 그 무뚝뚝한 병사는 일어서더니 객차의 난간으로 달려 나가 손을 흔듭니다. 친구들도 아쉬운 듯 플랫폼을 따라 달려 오며 손을 흔듭니다. 이내 열차의 속력에 친구들의 얼굴은 사라지고 그 풋풋한 이미지는 나그네의 가슴 한 켠을 출렁거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기차는 정읍엘 잠시 섰습니다. 어떤 중년의 남성이 눈에 들어 옵니다. 기차역 기둥에 서서 뭔가 눈가를 훔칩니다. 얼굴을 기둥에 가린 채 가끔 차창을 쳐다 보는 그의 눈가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살아 온 삶의 이력이 얼굴에 그려진 중년의 그 사나이. 얼굴을 채 내밀지 못하고 얼핏 얼핏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닦습니다. 기쁨의 눈물도 서운함의 눈물도 아닌 뭔가 회한이 서린듯한 그 눈물빛에 마음은 짠해져 옵니다. 누구를 떠나 보내는 것일까요. 마음을 다 못 표현하고 잘 해주지 못하고 떠나 보내는 누군가에 대한 회한이 서린 듯한 그 주인공에 대한 상상은 기차가 정읍을 떠나 피곤에 지쳐 잠에 떨어져 버릴 때까지 내 마음속 한 켠을 비집고 들어와 있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고 계산이 앞서는 시대, 이익이 있으면 몰리고 이익이 없으면 사라지는 굶주린 하이에나의 이합집산같은 시대, 순수와 의리가 매도 당하는 시대, 문득 문득 마주치는 이런 풍경들이 우리 삶의 95%는 아날로그임을 자각시켜줍니다.
너무도 쾌청한 5월입니다. 아침 창문을 여니 시큼한 산바람이 페부를 치뚫고 들어 옵니다.
이 좋은 계절 눈가에 핏발이 설 때, 눈을 감고 외쳐봐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자는 것이지? 무엇을 위하여 내가 이렇게 바쁜것이야? 그리고 다시 눈을 떠 보면 세상은 고요한 아날로그로 웃음지으며 거기 서있을 것입니다.

2005년 5월 2일 경안천 자락에서 김 익철 배상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