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것과 제대로 사는 것 사이속에서

01 8월 잘 사는것과 제대로 사는 것 사이속에서

잘 사는것과 제대로 사는 것 사이속에서

우리사회가 배가 부르면서 광풍처럼 몰아쳣던 것이 웰 비잉(well being)이다. 참으로 고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주제였다. 그러나 어느사이에 우리사회의 웰비잉은 맛있게 먹는 것, 근사하게 집을 꾸미는 것, 분위기 있게 와인을 마시는 것등 그 본래의 내면적 가치와 먼 이미지로 우리들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부여잡고 웰비잉이 무엇이세요 하면 70에서 80%가 잘먹고 잘사는 것으로 정의를 한다. 귀족이 무엇이라고 보세요 물으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같다. 본래 귀족은 고귀한 사고를 가진 집단이 본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웰비잉의 왜곡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것은 방송과 연예인집단이다. 오늘도 여전히 먹거리를 들고 나오고 멋지게 꾸민 집을 자랑하며 웰비잉이라고 수십번의 멘트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렇게 세뇌되어가는 것이다. 그 말에 현혹되어 오늘도 아줌마 아저씨는 가을이면 다람쥐가 되어 도토리를 먹이를 탐하러 다니고 봄이면 온 산야를 누비며 산나물을 탐하는 멧돼지의 친구가 된다. 어느덧 우리사회에서  웰비잉의 직역인 잘산다는 개념은 상대적 풍요성을 상징하고 있다. 오염된 웰비잉의 개념은 방향을 잃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의 삶에서 두가지의 행태와 격을 발견한다. 본능과 외형에 충실한 잘사는 사람과 자신만의 가치와 향기를 찾는 제대로 사는 사람. 잘사는 사람은 상대적 개념이고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상 볼 때 하위 1단계 2단계가 충족된 사람들의 모습이다. 더 넓게 보면 3단계까지도 볼 수가 있다. 반면에 제대로 산다는 개념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로 비유하면 상층부에 위치한 4,5단계에 위치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기는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의 틀에 속하는 영역이다.

상대적 풍요성에 사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에 따라 사십니까. 오늘도 사람들은 잘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고요하고 외롭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의 세계이다. 세상의 눈치를 보고 이웃과 비교하고 증거에 연연하는 사라들의 삶과는 격이 다른 세계이다.

제대로 사는 사람들, 쉽게 이야기 해서 자기답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조회롭고 안정된 여유의 향기를 보여준다. 한국사회도 그 쪽으로 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전에 성인을 위한 우화 <야생력>에서 비유한 집돼지와 멧돼지의 삶은 잘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나는 배부른 집돼지인지. 배가 고파도 자기다움 속에서 살다가는 멧돼지인지 가끔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김 익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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