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8월 착한 시간을 아시나요?
착한 시간을 아시나요?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착해진다고 한다. 아이들의 잠든 모습은 지극한 선이다. 하루 중에도 착한 시간이 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다. 나는 밤 12시를 사랑한다. 이 시간이 되면 나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하고 단정한 질서를 품은 이 시간에 경외심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는다. 세상이 착한 만큼 내안에서도 착한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누린다.
몇일 전에는 해가 떨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 처녀가 죽고 물에 떠내려 온 사람이 묻혔다는 섬뜩한 곳을 어둠속에 다시 되돌아 지나가기가 그래서 결국은 2시간 반을 걸어서 돌아 돌아서 운동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날 어느 작은 공장을 지나가다가 그 늦은 시간, 공장 창가로 들려 오는 그라인더 소리와 노동자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남들 다 쉬는 그 시간, 그 허름한 공장의 창가너머 형광등 불빛 아래로 보이는, 묵묵히 반복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 우리들이 배고프다 배고프다. 더 달라. 더 달라 할 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아무 조직도 없이 그냥 숙명 처럼 살아가는 저 잊혀진 진정한 노동자들. 그 밤길에 만난 공장의 그라인더의 소리는 내게 노래처럼 들려왔다. 내안에 비장된 무지의 금고를 쪼개는 소리처럼 내게 들려왔다. 그 곳을 한참인가 앉아 있다가 왔다.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내 귀가에는 공장의 그라인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려주는 밤이었기에 그 풍경이 내게는 의미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새벽의 시간은 그 밤보다도 착한 시간이다. 모든 기대를 내려 놓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은 눈을 뜬 순간부터 기대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며 살기 시작한다. 누가 누구를 배신했을까. 결국은 자신이 만든 자신의 기대가 자신을 배반했을 뿐이다. 자동차도 가로등도 도로도 자신으로 돌아간 시간, 기대가 잠든 시간 세상의 시간은 참으로 착하고도 착하다.
500명의 프로페서들이 이번 대선에 캠프로 참여했다고 한다. 사람은 3명인데 500개의 기대가 요동친 시간이었다. 그 500개의 기대들도 이 새벽엔 착하게 잠자고 있을까?
2012년 11월 26일 새벽 0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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