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8월 치유와 깨달음이 있는 숲
나의 집 뒤에는 가끔씩 오르는 호젓한 나만의 산길이 있다. 농로를 따라 작은 계곡을 건너고 저 멀리 홀로 누워 있는 무덤 하나가 보이는 곳 누구인지 몰라도 자리는 잘 잡았다. 그 앞에는 내가 안거나 잠시 눕기 좋은 바위 하나가 있고 시간이 없으면 이 정도에서 길을 멈추고 호흡을 정리하며 명상에 빠진다. 그 바위에는 지나온 시간에 내가 벗어 놓은 수많은 나의 껍질이 놓여져 있다.
어찌 동물과 곤충만 털갈이를 하고 껍질을 벗으리오. 인간은 수시로 껍질을 벗는 존재이다. 그것이 인간다움일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이다.”라고 하였다. 가끔씩 오르는 산에서 나는 나의 껍질이 투두둑하고 벗겨져 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욕심을 내서 능선까지 오르다 보면 항상 겪는 심리적 변화에 맞부딪힌다. 제대로 된 산행에 있어서의 인간의 내적 변화와 저항을 살펴보면
첫 번째가 안주단계로서 집에서 갈등하는 단계이다. 오늘은 그냥 있자. 갈까,말까하는 갈등이 오가는 단계이다.
두 번째가 의심이 교차하는 변화의 인지단계이다. 집 밖을 나서며 상황에 대한 반신 반의가 나지막하게 저변에 깔리는 단계이다. 묵묵히 골목길을 지나고 산길을 보며 걸어가지만 아직은 안주의 그림자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않고 손짓하고 있다.
세 번째가 저항의 단계이다. 산길을 본격적으로 오르는 10분여의 시간에 많이 발생하는 격렬한 내적 반응이다. “에이 짜증나. ” “힘들어.” “그냥 쉴걸.”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많은 부정적 의식이 난무하는 변화의 고비 단계이다.
네 번째가 평화의 단계이다. 산중턱을 지나고 첫 번째 휴식을 통하여 부정적 의식과 독과 같은 몸속의 땀을 배출해 낸 후 서서히 찾아드는 잔잔한 평화들이다. 이 순간에 의심에 흔들리던 결단은 자부심을 회복하고 부정의 그림자는 더 이상 변화의 주체인 나를 설득하려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가 축적의 단계이다. 반복되는 잔잔한 숨 가쁨과 평화를 겪으며 모든 것이 종료되고 하산을 할 때 내안에 밀려 오는 성공의 기쁨은 추억으로 쌓이고 그 미련에 붉게 물든 낙엽하나라도 가져오려고 노력을 한다. 행여 일행이 있다면 내려오며 사진 한장이라도 찍으려 하거나 동동주 한잔으로 오늘을 기억하여 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단계는 잘 살펴 보면 매일 일상에서 반복 된다는 것이다. 변화에서 가장 많이 직면하는 것이 안주단계와 저항의 단계일 것이다. 마음과 말로서 부정이 출렁거릴 때, 그 때 그 상황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내안에서 나를 갉아먹던 영혼의 벌레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은거지를 보존하려고 저항하는 단계이다. 그런 순간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 순간에 조금만 더 나아가라. 그 몇 발자욱뒤에 몰려 오는 깊은 빛, 안도, 성취감, 평화가 어느순간 황홀하게 우리들의 주위로 쏟아져 내려 올 것이다.
이렇듯 작은 나만의 뒷산길에도 삶은 진실로 넘쳐 흐르고 삶의 진실은 매순간 나를 시험하고 나를 평화에 들게 한다. 낙엽이 다 떨어져 가는 시간. 산길을 오르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이 숲을 서걱거리며 가끔씩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상수리나무의 잎새가 나그네의 발자욱소리에 반주를 맞추곤 한다.
땀을 식히며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정리하는 시간. 어디선가에서는 고라니가 골짜기를 타고 걸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호젓한 작은 산길을 걸어가는 산행에서 나는 나의 껍질을 벗고 다시금 나의 자리로 돌아온다. 이 작은 숲과 산은 나의 영혼을 씻기는 샤워장이다.
2009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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