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별 아래서 당신과 나는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01 8월 푸른별 아래서 당신과 나는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찬 기운에 졸음에 겨운 눈으로 일어나 살짝 열어 놓았던 베란다 문을 닫았습니다. 이불을 당겨서 몸을 가렸습니다. 가을을 느끼며 잠을 설치다가 신문을 주워서 놀이터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뒷산은 푸르고 공기는 상쾌하고 구름은 해맑게 산을 베개 삼아 노니는 아침. 내 입에서는 “아. 좋다’란 말이 흘러 나옵니다. 놀이터 느티나무 앞에 신문을 잠시 놓고 몸을 풉니다. 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느라고 흐트러졌던 몸이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합니다. 몸과 호흡을 제자리에 돌려 놓고 느티나무그늘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 봅니다.

그러나 신문의 소식은 눈에 들어 오지 않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참으로 풍요롭고도 정감 어린 노래 소리가 나의 마음을 이끕니다.
신문을 놓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풀숲에서 나는 수많은 귀뚜라미를 위시한 풀벌레소리가 평화롭고도 감미로운 오케스트라가 되어 가을이 몰려오는 아침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소리에 푹 빠져서 신문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더라도 잠시 나를 잊고 하나의 풀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순간 소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서울의 한강공원을 걸어가든 강원도 육백 마지기 너른 고산지대에서 잠시 땀을 식히던 북한의 뜨겁고 힘든 시간의 공간에서 아침 길을 걸어가든 우리가 지금 이순간 현실의 나를 잠시 잊고 이 아침의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통은 설득이 필요 없습니다. 그 세상엔 공유된 하나의 자발적인 그림이 존재하니까요. 소통엔 시시비비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그림으로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는 세상이니까요.

보석같이 빛나던 가을아침의 풀벌레소리의 합창에 빠졌다가 몸을 추스리며 일어나는 순간, 초여름내내 주렁주렁 과실을 매달고 동네 꼬마들을 즐겁게 해주던 살구나무가 그 황홀하던 노란 과실의 인연을 세상에 내준 쓸쓸함도 잊어버린 채 내 옆에서 함께 소통하였음을 발견합니다.

내일 아침 당신과 내가 어디에선가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었다면 알고만 계십시오. 우리는 이 아름다운 푸른 별에서 한 시대의 인연으로 태어나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을.

2010년 8월 27일 초가을의 아침에
김 익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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