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월 한국은 혼(魂·mojo)을 잃은 호랑이
‘한국은 혼(魂·mojo)을 잃은 호랑이. -조선일보2015년12월-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166명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다. 이 대규모 사절단을 보면서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표현했다. “박 대통령에게 가장 큰 도전은 북한 핵 문제나 미·중 간의 외교 줄타기가 아니라 바로 경제다.”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며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한국에 대해 최근 외신 및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 ‘기적의 껍질이 벗겨진 한국 경제’처럼 우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한국 경제가 2016년에는 더 심한 혹한의 터널로 들어선다.
당장 17일 새벽(한국 시각) 미국은 근 10년 만에 기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주범이었던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돼 풀었던 돈줄을 조이는 것이다. 이에 맞서려고 중국도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유럽 등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 낮추는 바람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풍랑이 다시 거세졌다. 국제 유가가 연일 하락해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중동 등에서는 지갑을 닫고 있다.이런 파고를 견뎌내야 할 한국 경제의 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된 상태여서 기업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본지가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경제 부처 장관을 지낸 10명을 통해 한국 경제를 진단한 결과 10명 모두 “제조업과 수출을 앞세운 한국 경제의 성장 모델이 수명을 다했다. 이젠 진통제 처방만으로 만성화된 위기를 버텨나갈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과 전직 장관들이 꼽은 한국 경제의 당면 위기는 크게 네 가지로 집약된다.무엇보다 한국을 둘러싼 대외 여건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난류(미국 금리 인상)와 한류(일본·EU의 양적 완화)가 소용돌이치는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세계 교역 규모는 2008년 금융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한국을 먹여 살려 온 수출이 상당 기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둘째, “한국 경제는 고령화되는 거대한 양로원”(짐 로저스)이란 비유가 등장할 만큼 인구 구조가 더 이상 경제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고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이 같은 대내외 제약보다 더 근본적 위기는 체격 커진 한국 경제가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한국은 위기 원인을 밖에서 찾지만 실은 내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가령 한·중·일 3개국 중 인건비 올라가는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 한국이다.
철강·조선 등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렸던 주력 산업의 시장점유율은 3년 전부터 중국에 밀리고 있다.경제의 역동성이 뚝뚝 떨어지는데, 이에 대한 자각 증세는 전혀 없는정치권의 위기 불감증이 한국 경제에는 최대 리스크가 되고 있다. 가령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근거 법률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올해로 시한이 만료되는 한시법이다. 이 법이 연장되지 않으면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은 법률적 근거를 상실하고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안을 다루는 상임위원회(정무위) 자체가 열리지 않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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