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입춘, 암자를 찾아서

01 8월 2008 입춘, 암자를 찾아서

입춘날 암자를 찾아갔습니다.

자박 자박 눈쌓인 산길을 걸었습니다. 폐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락 날락 거리고 울렁거리기 조차 합니다. 모든 변화의 시작에 찾아드는 타성의 막이 찢겨져 나가는 순간의 아린 고통이 몸속을 파고듭니다. 인적이 끊긴 눈길만이 암자로 가는 길에 이어지고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이산저산을 쓸어내며 분주히 오갑니다. 적막한 산속에서는 짐승의 발자국조차도 반갑습니다. 고개 길은 계속 이어지고 이제는 어둠 속에서 바람소리만을 의지한 채 걸어 나갑니다. 어둠과 바람과 다리의 뻐근함 속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다가왔습니다.  신라말 영광의 커튼을 내리던 경순왕이 피로에 젖은 식솔과 군사를 이끌고 오르던 이 길은 나는 이 어둡고 추운시간 속에 왜 찾아들어 오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또 대답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삶에 있어서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에 모든 조직과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서서히 스러져 가는 것이다. 오늘 나는 이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아직도 멀고도 긴 나의 생명의 발전을 자각하고 있다.’
백련암의 산길 모퉁이로 별들이 나타납니다. 모퉁이를 돌자 암자의 주황색 불빛이 문창호를 타고 새어나오는 것이 보입니다.
안도감에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며 하늘을 보았습니다.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출렁거립니다. 바람은 이산 저산을 오가고 암자의 풍경소리가 간간히 장단을 맞춥니다.
드디어 마음에 꼭 찍어 놨던 암자에 구정을 사흘 앞두고 입춘날 올라왔습니다.
고통과 자문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행복하다는 생각만이 몸과 마음으로 퍼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올 한해도 내속의 타성을 버리며 보다 높은 곳의 별빛을 찾아 오르는 긴장이 잔잔히 흐르고 생명의 의지가 충만한 시간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주지스님과 다담을 나누고 작지만 아담한 골방에 들어왔습니다. 문밖엔 해발 900고지를 오가는 바람소리와 풍경소리만이 들려옵니다.
내가 아는 모든 아름다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연들이 차가운 겨울바람 같은 이성과 정상의 별빛 같은 뜨거운 열정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참다운 행복을 일구며 사는 한해가 되기를 외롭고 적막하나 충만한 이룸이 있는 산사에서 기원 드리옵니다.

2008년 2월 4일 감악산 백련암 골방에서
김 익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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